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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와이 하야오 -융 심리학의 전문 심리상담가


'듣는다는 것'은 나의 본업입니다.
상담을 할 때에 기본은 '듣는' 것  입니다.
나는 카운슬러의 기본은 '말하면 들어라, 말하지 않아도 들어라'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듣는 것이 기본이어서, 상담하러 온 사람이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듣습니다. 
대개 카운슬러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거나 조언해 주는 사람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그런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때로 그럴 때도 있습니다만,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대체로 카운슬러는 듣기만 합니다. 

예를 들면, 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은 누구나 자신은 이것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고 내게 묻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리라 기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물을 때,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되묻습니다.

그러면 상담하러 온 사람은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고 나는 조용히 듣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진심으로 끝까지 듣는 경우는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를 접어버리거나 그만두고 맙니다. 

하지만 카운슬러는 이야기를 철저하게 듣습니다. 
다만 그때마다 전문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조금씩 심화해 가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일반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듣습니다.

보통은 "저는 영화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면
"무슨 영화를 좋아하세요?"라든가 "어떤 감독을 좋아하세요?"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전문 카운슬러들은 "영화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해도 "네"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말에도 "네"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묵묵히 듣기만 합니다. 
왜냐하면 말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전문 카운슬러들은 내담자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겁니다. 


그 사람이 '당장 죽고 싶다'고 말해도 그에게는 죽고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묵묵히 듣는 태도는 상담하러 온 사람의 현재 생각과는 전혀 다른 측면을 발견하고 주목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저 묵묵히 듣는 태도는 매우 간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엄청난 긴장감을 안고 무대에 서는데, 그런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
묵묵히 듣는 일일 것입니다. 

게다가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죽고싶다'는 말을 하면 '그러시지요'라고 대답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시지요'하고 대답했는데 정말 죽는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그러나 승부수를 던지는 이런 승부사와 같은 성향이 없다면 카운슬링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보기에 일본의 카운슬러 중에는 승부사가 많지 않습니다. 

책읽기도  듣기처럼 스스로를 몰입해 읽다 보면 몸이 반응을 보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온몸으로 듣는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라는 존재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상담하러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굉장히 불행한 사람도 있고 엄청나게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나 역시 매우 힘이 듭니다. 
이럴 때 카운슬러는 슈퍼바이저(spervisor)를 찾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슈퍼바이저에게 털어놓고 나면 안정을 찾고 다시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나는 다른 사람의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듣기를 음악에 비유해보면 멜로디 뒤에는 수많은 음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멜로디만 듣고 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뒤에 흐르는 모든 음을 함께, 전체적으로 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식의 '듣기'를 통해 분명 깊이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